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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웃
“남 돕는 그 기분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 매주 수요일 저녁 차재원군은 서울 미아동의 할머니 집을 찾아 반찬을 전하고 말벗이 돼드린다.
홀로 살며 홀몸노인 돌보는 고3 차재원군
광운전자공고 3학년 차재원(18)군은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지만 연꽃을 닮았다.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 사바세계의 삶을 자양분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자를 닮은 꽃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단란한 가정,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면 봉사도 하지 않았을테고, 좋은 사람들도 못 만났겠죠. 그게 더 불행한 삶이라 생각됩니다. 어려웠던 시절의 경험이 제 삶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삶에 대한 통찰이 여느 어른 못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다. 고3이 봉사를? 공고를 다니지만 재원군은 대입을 준비중인 수험생이다. 그는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미아2동 구세군강북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 홀몸 어르신에게 반찬을 가져다주는 일을 한다. 지난 겨울 방학 때 한 주에 3번씩 학습부진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면서 인연을 맺은 곳이다.
주말에는 월계동 사슴아파트를 찾는다. 그 아파트에는 그와 인연을 맺은 혼자 사는 할머니 세 명이 산다. 말벗이 되어주는 일이 주된 봉사지만 과일이나 간식을 사들고 갈 때가 많다.
“할머니들께서 저를 친손자처럼 대해주세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집에서 2~3시간이 후딱 지나갈 때도 많습니다.”
지난 설날에는 직접 떡국을 끓여서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냄비에 든 떡국이 식을까 그가 살고 있는 고시원에서 아파트까지 뛰어갔다고 했다. “올해 처음 먹는 떡국이라며 감격해 하시더라구요.”
반 회장이자 학생회 간부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3월 친구들과 그레이트봉사단이라는 모임도 꾸렸다. 학교가 쉬는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그는 친구들과 성동구의 장애인 복지관을 찾는다. 사이월드의 사회공헌 플랫폼 ‘사이좋은 세상’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봉사활동에 대한 글을 올리고 정보도 나누고 있다. 구세군 강북복지관에 대한 정보도 이곳에서 얻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고1때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나도 남을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바닥생활’을 겪었다. 2003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어쩌다 한 번씩 전화가 올 뿐 지금까지 만난 적도 없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재혼해 함께 살던 새엄마는 2003년 중3인 어린 그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그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신문지국 사무실에서 먹고 잤다. 새벽 3~4시에 일어나야 하는 일이어서 저녁8시면 곯아떨어졌다.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성적은 날로 떨어져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하위 7%에 속했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쳐왔다. 동사무소와 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이 그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도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수급권자가 되어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동네 복지관에서 그를 소개받은 한 치과 병원장은 지금도 그의 통장으로 다달이 후원금을 보내온다.
신문배달을 그만둬도 도리 정도로 형편이 나아졌다. 재원군은 고시원으로 숙소를 옮긴 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1시가 넘어서 잘 정도로 공부에 매달렸다. 지금은 상위 17%안에 들 정도로 성적이 올랐다고 한다. 그의 꿈은 호텔조리학과에 들어가 일식 요리사가 되는 것이다. 조리학원을 다니고 싶지만 한달에 30만원이나 하는 수업료 탓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예 대학 관련학과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고 한다.
“예수님이 사랑하며 살라고 하셨잖아요. 봉사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발걸음도 가벼워요. 안해본 사람은 몰라요.”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기사등록 : 2006-03-28 오후 06:58:00기사수정 : 2006-03-29 오전 03: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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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돕는 그 기분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 매주 수요일 저녁 차재원군은 서울 미아동의 할머니 집을 찾아 반찬을 전하고 말벗이 돼드린다.
홀로 살며 홀몸노인 돌보는 고3 차재원군
광운전자공고 3학년 차재원(18)군은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지만 연꽃을 닮았다.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 사바세계의 삶을 자양분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자를 닮은 꽃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단란한 가정,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면 봉사도 하지 않았을테고, 좋은 사람들도 못 만났겠죠. 그게 더 불행한 삶이라 생각됩니다. 어려웠던 시절의 경험이 제 삶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삶에 대한 통찰이 여느 어른 못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다. 고3이 봉사를? 공고를 다니지만 재원군은 대입을 준비중인 수험생이다. 그는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미아2동 구세군강북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 홀몸 어르신에게 반찬을 가져다주는 일을 한다. 지난 겨울 방학 때 한 주에 3번씩 학습부진 초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면서 인연을 맺은 곳이다.
주말에는 월계동 사슴아파트를 찾는다. 그 아파트에는 그와 인연을 맺은 혼자 사는 할머니 세 명이 산다. 말벗이 되어주는 일이 주된 봉사지만 과일이나 간식을 사들고 갈 때가 많다.
“할머니들께서 저를 친손자처럼 대해주세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집에서 2~3시간이 후딱 지나갈 때도 많습니다.”
지난 설날에는 직접 떡국을 끓여서 할머니 집을 찾아갔다. 냄비에 든 떡국이 식을까 그가 살고 있는 고시원에서 아파트까지 뛰어갔다고 했다. “올해 처음 먹는 떡국이라며 감격해 하시더라구요.”
반 회장이자 학생회 간부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3월 친구들과 그레이트봉사단이라는 모임도 꾸렸다. 학교가 쉬는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그는 친구들과 성동구의 장애인 복지관을 찾는다. 사이월드의 사회공헌 플랫폼 ‘사이좋은 세상’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봉사활동에 대한 글을 올리고 정보도 나누고 있다. 구세군 강북복지관에 대한 정보도 이곳에서 얻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고1때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나도 남을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바닥생활’을 겪었다. 2003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어쩌다 한 번씩 전화가 올 뿐 지금까지 만난 적도 없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재혼해 함께 살던 새엄마는 2003년 중3인 어린 그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그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신문지국 사무실에서 먹고 잤다. 새벽 3~4시에 일어나야 하는 일이어서 저녁8시면 곯아떨어졌다.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성적은 날로 떨어져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하위 7%에 속했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쳐왔다. 동사무소와 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이 그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도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수급권자가 되어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동네 복지관에서 그를 소개받은 한 치과 병원장은 지금도 그의 통장으로 다달이 후원금을 보내온다.
신문배달을 그만둬도 도리 정도로 형편이 나아졌다. 재원군은 고시원으로 숙소를 옮긴 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1시가 넘어서 잘 정도로 공부에 매달렸다. 지금은 상위 17%안에 들 정도로 성적이 올랐다고 한다. 그의 꿈은 호텔조리학과에 들어가 일식 요리사가 되는 것이다. 조리학원을 다니고 싶지만 한달에 30만원이나 하는 수업료 탓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예 대학 관련학과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고 한다.
“예수님이 사랑하며 살라고 하셨잖아요. 봉사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발걸음도 가벼워요. 안해본 사람은 몰라요.”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기사등록 : 2006-03-28 오후 06:58:00기사수정 : 2006-03-29 오전 03: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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