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게 행복한 대한민국'은 불가능한가
[저출산고령화의 덫 4] '고출산'보다 '인간다운 삶' 지향해야
나는 내년이면 마흔이다. 같은 연배의 남성들은 하나둘 안정된 연구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 둘을 등교시키는 과업을 완수하고서야 집을 나설 수 있는 '아줌마 학생'이다.
원래 새벽형 인간인 내가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없다면 늙은 학생 신분을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새벽의 첫 지하철을 타는 신선한 느낌을 맛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도서관을 나설 수도 있으리라.
"아줌마들은 행복할까?"
그러나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어지러운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집을 나서서 학교에 도착하면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다. 작년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근처에 방과 후 교실이 없는 탓에 늘 빈 집에 열쇠로 열고 들어와서 지루함을 달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또 한 달에 두 번씩 돌아오는 급식당번은 얼마나 당황스러웠던가. 오후면 수시로 걸려오는 아이들의 전화에 도서관에서 몇 번씩 뛰어나가다 보면 어느덧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된다.
나이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이 말은 참으로 과학적인 것 같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다가 부딪힌 대형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늘 종종걸음 치며 초초하게 살아야 는 나…. 내 딴에는 꽃단장 한다며 신경 좀 쓰고 나와도 사람들로부터 늘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행복한가? 내 주변의 아줌마들은 행복할까?' 최근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해본다.
왜 나는 선뜻 '나는 행복해'라고 말하지 못할까? 내 여자친구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울트라 슈퍼우먼 같은 나의 결혼생활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주은아, 내가 결혼 안 한 데는 네 책임도 있어. 너처럼 아둥바둥 힘들게 사는 걸 보면 결혼할 생각이 싹 가신다. 여자들은 왜 다들 결혼해서 행복하기는커녕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걸까. 차라리 나는 너같이 되지 않기 위해 솔로로 살련다."
"보육정책, 관점을 바꾸지 않고는 헛일"
결혼생활이 여성들에게 행복하지 못한 현실은 한국사회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이혼율의 근본 원인이다. 1.17이라는 우리나라의 낮은 합계출산율은 결혼한 여성들이 자녀를 적게 낳아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불행한 결혼 자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비혼여성의 증가가 낳은 문제일지 모른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혼으로 끝내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이혼율도 높아졌다. 한국사회에서는 낮은 출산율과 높은 이혼율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결혼이 불행한 여러가지 이유들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어머니가 되는 것이 주는 부담'이다.
한국사회는 자녀양육의 1차적인 책임을 아버지나 사회가 아닌 어머니에게 돌린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족친화적인 저출산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육아휴직의 활성화 등 대부분의 보육정책 방안들은 여전히 '아내가 가사노동을 전담해주는 남편'으로서의 남성의 삶을 전제로 한 것들이다. 이런 정책으로는 여성들의, 아니 어머니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어렵다.
미혼여성의 입에서 '무자식 상팔자' 얘기가 나와서야
여성노동자의 임금이 남성노동자의 60%도 안 되는 현실에서 육아휴직 급여 40만 원을 받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람의 성은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육아휴직의 전제 자체가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는 가정에서 개별 부모가 양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기에 공보육 활성화 논의와 모순된다. 그나마 국공립 보육시설의 비중은 5%라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고, 경제부처는 끊임없이 보육을 자유경쟁의 시장논리에 맡기려고만 한다.
정부의 보육정책은 기혼여성들의 취업을 보조하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래의 일꾼이 될 사회 구성원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정책이라는 '도구적 성격'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보육정책은 가사노동자인 전업주부, 미래의 일꾼일 가능성이 없는 장애아동까지도 대상으로 하여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정책이어야 한다.
보육 인프라의 미비와 보육정책의 빈약함은 여성들로 하여금 패배감과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에서가 아니라 미혼여성의 입에서 나오는 현실은 뭔가 문제가 있다. 공보육의 활성화를 언제까지 공허하게 외치기만 할 것이며,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셋째 아이 출산 장려금', '셋째 아이 보육료 지원', '다산왕 선발대회' 류의 저출산 대책으로 세월을 보낼 것인가.
"대한민국 엄마들은 미치기 일보 직전"
이 땅의 어머니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머니들이 짊어지고 있는 가사노동과 육아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주지 못해 여성들을 정신분열 상황으로 몰아간다. 24시간 보육시설에 일주일 동안 자녀를 맡기는 엄마는 '이기적인 엄마'로 매도당할 정도로 보육시설의 질이 의심받고 있는 데 대해 정부는 신경을 쓰고는 있는 걸까?
영아 보육시설과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 후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일하는 엄마들은 늘 노심초사해야 하고,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급식당번이나 청소 등의 학교부역 노동에 시달리며 자괴감에 빠진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정부는 기혼 여성들로 하여금 임신, 출산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만 하며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태도를 당장 버려야 한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돌려져 온 돌봄노동의 책임도 여성과 더불어 남성, 기업, 사회, 국가가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 그래야 이 땅의 어머니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평등의식과 인권의식이 확산되어 미혼모의 자녀, 장애아동, 여성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당하게 인정받고 사회적 보살핌을 받을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만 낙태와 영아수출(국제입양)이 사라질 것이다. 저출산에 대한 국가적인 걱정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여성들이 어머니가 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조주은/여성학자
2005-11-02
[저출산고령화의 덫 4] '고출산'보다 '인간다운 삶' 지향해야
나는 내년이면 마흔이다. 같은 연배의 남성들은 하나둘 안정된 연구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 둘을 등교시키는 과업을 완수하고서야 집을 나설 수 있는 '아줌마 학생'이다.
원래 새벽형 인간인 내가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없다면 늙은 학생 신분을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새벽의 첫 지하철을 타는 신선한 느낌을 맛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도서관을 나설 수도 있으리라.
"아줌마들은 행복할까?"
그러나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어지러운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집을 나서서 학교에 도착하면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다. 작년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근처에 방과 후 교실이 없는 탓에 늘 빈 집에 열쇠로 열고 들어와서 지루함을 달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또 한 달에 두 번씩 돌아오는 급식당번은 얼마나 당황스러웠던가. 오후면 수시로 걸려오는 아이들의 전화에 도서관에서 몇 번씩 뛰어나가다 보면 어느덧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된다.
나이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이 말은 참으로 과학적인 것 같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다가 부딪힌 대형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늘 종종걸음 치며 초초하게 살아야 는 나…. 내 딴에는 꽃단장 한다며 신경 좀 쓰고 나와도 사람들로부터 늘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행복한가? 내 주변의 아줌마들은 행복할까?' 최근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해본다.
왜 나는 선뜻 '나는 행복해'라고 말하지 못할까? 내 여자친구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울트라 슈퍼우먼 같은 나의 결혼생활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주은아, 내가 결혼 안 한 데는 네 책임도 있어. 너처럼 아둥바둥 힘들게 사는 걸 보면 결혼할 생각이 싹 가신다. 여자들은 왜 다들 결혼해서 행복하기는커녕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걸까. 차라리 나는 너같이 되지 않기 위해 솔로로 살련다."
"보육정책, 관점을 바꾸지 않고는 헛일"
결혼생활이 여성들에게 행복하지 못한 현실은 한국사회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이혼율의 근본 원인이다. 1.17이라는 우리나라의 낮은 합계출산율은 결혼한 여성들이 자녀를 적게 낳아서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불행한 결혼 자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비혼여성의 증가가 낳은 문제일지 모른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혼으로 끝내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이혼율도 높아졌다. 한국사회에서는 낮은 출산율과 높은 이혼율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결혼이 불행한 여러가지 이유들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어머니가 되는 것이 주는 부담'이다.
한국사회는 자녀양육의 1차적인 책임을 아버지나 사회가 아닌 어머니에게 돌린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족친화적인 저출산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육아휴직의 활성화 등 대부분의 보육정책 방안들은 여전히 '아내가 가사노동을 전담해주는 남편'으로서의 남성의 삶을 전제로 한 것들이다. 이런 정책으로는 여성들의, 아니 어머니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어렵다.
미혼여성의 입에서 '무자식 상팔자' 얘기가 나와서야
여성노동자의 임금이 남성노동자의 60%도 안 되는 현실에서 육아휴직 급여 40만 원을 받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람의 성은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육아휴직의 전제 자체가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는 가정에서 개별 부모가 양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기에 공보육 활성화 논의와 모순된다. 그나마 국공립 보육시설의 비중은 5%라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고, 경제부처는 끊임없이 보육을 자유경쟁의 시장논리에 맡기려고만 한다.
정부의 보육정책은 기혼여성들의 취업을 보조하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래의 일꾼이 될 사회 구성원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정책이라는 '도구적 성격'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보육정책은 가사노동자인 전업주부, 미래의 일꾼일 가능성이 없는 장애아동까지도 대상으로 하여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정책이어야 한다.
보육 인프라의 미비와 보육정책의 빈약함은 여성들로 하여금 패배감과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에서가 아니라 미혼여성의 입에서 나오는 현실은 뭔가 문제가 있다. 공보육의 활성화를 언제까지 공허하게 외치기만 할 것이며,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셋째 아이 출산 장려금', '셋째 아이 보육료 지원', '다산왕 선발대회' 류의 저출산 대책으로 세월을 보낼 것인가.
"대한민국 엄마들은 미치기 일보 직전"
이 땅의 어머니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머니들이 짊어지고 있는 가사노동과 육아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주지 못해 여성들을 정신분열 상황으로 몰아간다. 24시간 보육시설에 일주일 동안 자녀를 맡기는 엄마는 '이기적인 엄마'로 매도당할 정도로 보육시설의 질이 의심받고 있는 데 대해 정부는 신경을 쓰고는 있는 걸까?
영아 보육시설과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 후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일하는 엄마들은 늘 노심초사해야 하고,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급식당번이나 청소 등의 학교부역 노동에 시달리며 자괴감에 빠진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정부는 기혼 여성들로 하여금 임신, 출산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만 하며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태도를 당장 버려야 한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돌려져 온 돌봄노동의 책임도 여성과 더불어 남성, 기업, 사회, 국가가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 그래야 이 땅의 어머니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평등의식과 인권의식이 확산되어 미혼모의 자녀, 장애아동, 여성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당하게 인정받고 사회적 보살핌을 받을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만 낙태와 영아수출(국제입양)이 사라질 것이다. 저출산에 대한 국가적인 걱정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여성들이 어머니가 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조주은/여성학자
200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