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말자… 아이들을 위하여” 時給 3300원
불황시대의 新‘소외지대’… 신지은 기자 취업르포
‘울지 말자, 자존심을 버리자, 아이들만 생각하자….’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 때문에 ‘필기왕(筆記王)’이라고 불린 최고령(41) 주부 사원은 매일매일 이렇게 다짐하면서 집을 나선다. 고된 아르바이트 때문에 중학교 1학년 아들, 초등학교 5학년 딸 아이를 ‘소년소녀 가장’처럼 만든 지가 3년째다. 지난 2일 “결근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무서워 아들 중학교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입학식 날 집을 나서면서 아들 손에 1000원짜리 한 장을 쥐어줬지만 “엄마 써” 하며 돌려주는 아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필기왕’ 엄마의 평일 아르바이트 시간은 7시간, 토·일요일 주말엔 10시간씩 일한다. 서울 사당동 집에서 강북 아르바이트 일자리까지 출·퇴근 시간만 왕복 3시간. 보통 낮에 일을 시작해 밤 10시 이후에나 퇴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집안 일도 챙긴다. 시간당 임금(時給)은 3300원.
‘필기왕’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빚 1000만원 때문에 세간까지 차압당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불황으로 남편의 도배 가게가 개점 휴업상태에 빠졌다. 집을 팔고, 전세로, 다시 월세 20만원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내려앉았다.
“패물을 팔아 300만원을 가지고 은행에 갔어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지금 정말로 가진 돈은 이것뿐입니다. 일심히 일해서 갚겠습니다’ 엉엉 울면서 이렇게 두 손 모아 싹싹 빌었어요.” 동네 할인 매장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친구들 때문에 창피하다. 이사가자”고 조르는 아이들 때문에 지난 2월 21일 이곳 강북의 할인 매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날 함께 입사한 아르바이트 여성 사원 14명(기자 제외) 중 주부사원은 5명. 3남매를 둔 38세 주부는 “아이들 학원을 보내기 위해”, 다섯 살 아들을 둔 39세 주부는 “딸 아이 유치원비를 벌기 위해”, 식품 코너에서 일하는 40세 주부는 “이혼 후 남겨진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戰線)에 나섰다고 했다.
2월 23일 밤 10시30분.
오후조(組) 근무가 끝난 직후 이날도 어김없이 이런 광경이 반복됐다. 아르바이트 주부 사원들이 라커룸으로 들어와 일제히 휴대전화 버튼을 눌러 근무시간 내내 걱정이 앞서던 아이들을 찾는 모습이다.
“아빠 들어왔니? 저녁은 드셨대?”
“자장면 그릇은 문 밖에 내 놨지? 엄마 마쳤어. 금방 갈게.”
“아직도 안 먹었어? 엄마 없으면 밥도 못 먹니?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데…. 금방 간다. 기다려.”
안쓰러운 목소리, 초조한 목소리, 성난 목소리가 뒤섞였다. 전화를 끊은 30~40대 주부사원들이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모래알처럼 집으로 흩어지기까지는 5분이 채 안 걸린다. 마음은 급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정이 다 돼서야 그리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41살 주부는 버스 2번, 지하철 2번을 갈아타고 서울 동작구 사당동 집까지 1시간30분, 다섯살 아들을 둔 39살 주부는 서울 송파구 마천동 남한산성 인근 집까지 1시간….
텅빈 라커룸 구석에 식품코너 아줌마가 번데기처럼 이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언니, 집에 가요.” 흔들어 깨우자, “나 오늘 야근조(밤새워 일하는 조)야. 안녕. 내일 보자”며 ‘끙’ 하고 일어나 매장으로 향했다. 야근을 하면 시급의 50%(1650원)를 추가로 받는다. 서울 도봉구 창동 다가구 주택 월세 25만원짜리 옥탑방에서 두 자녀와 살고 있는 40대 주부사원. 오로지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5년째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있다.
신지은기자 ifyouare@chosun.com
조선일보 (수정 : 2005.03.14 09:19 58')
불황시대의 新‘소외지대’… 신지은 기자 취업르포
‘울지 말자, 자존심을 버리자, 아이들만 생각하자….’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 때문에 ‘필기왕(筆記王)’이라고 불린 최고령(41) 주부 사원은 매일매일 이렇게 다짐하면서 집을 나선다. 고된 아르바이트 때문에 중학교 1학년 아들, 초등학교 5학년 딸 아이를 ‘소년소녀 가장’처럼 만든 지가 3년째다. 지난 2일 “결근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무서워 아들 중학교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입학식 날 집을 나서면서 아들 손에 1000원짜리 한 장을 쥐어줬지만 “엄마 써” 하며 돌려주는 아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필기왕’ 엄마의 평일 아르바이트 시간은 7시간, 토·일요일 주말엔 10시간씩 일한다. 서울 사당동 집에서 강북 아르바이트 일자리까지 출·퇴근 시간만 왕복 3시간. 보통 낮에 일을 시작해 밤 10시 이후에나 퇴근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집안 일도 챙긴다. 시간당 임금(時給)은 3300원.
‘필기왕’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빚 1000만원 때문에 세간까지 차압당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불황으로 남편의 도배 가게가 개점 휴업상태에 빠졌다. 집을 팔고, 전세로, 다시 월세 20만원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내려앉았다.
“패물을 팔아 300만원을 가지고 은행에 갔어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지금 정말로 가진 돈은 이것뿐입니다. 일심히 일해서 갚겠습니다’ 엉엉 울면서 이렇게 두 손 모아 싹싹 빌었어요.” 동네 할인 매장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친구들 때문에 창피하다. 이사가자”고 조르는 아이들 때문에 지난 2월 21일 이곳 강북의 할인 매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날 함께 입사한 아르바이트 여성 사원 14명(기자 제외) 중 주부사원은 5명. 3남매를 둔 38세 주부는 “아이들 학원을 보내기 위해”, 다섯 살 아들을 둔 39세 주부는 “딸 아이 유치원비를 벌기 위해”, 식품 코너에서 일하는 40세 주부는 “이혼 후 남겨진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戰線)에 나섰다고 했다.
2월 23일 밤 10시30분.
오후조(組) 근무가 끝난 직후 이날도 어김없이 이런 광경이 반복됐다. 아르바이트 주부 사원들이 라커룸으로 들어와 일제히 휴대전화 버튼을 눌러 근무시간 내내 걱정이 앞서던 아이들을 찾는 모습이다.
“아빠 들어왔니? 저녁은 드셨대?”
“자장면 그릇은 문 밖에 내 놨지? 엄마 마쳤어. 금방 갈게.”
“아직도 안 먹었어? 엄마 없으면 밥도 못 먹니?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데…. 금방 간다. 기다려.”
안쓰러운 목소리, 초조한 목소리, 성난 목소리가 뒤섞였다. 전화를 끊은 30~40대 주부사원들이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모래알처럼 집으로 흩어지기까지는 5분이 채 안 걸린다. 마음은 급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정이 다 돼서야 그리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41살 주부는 버스 2번, 지하철 2번을 갈아타고 서울 동작구 사당동 집까지 1시간30분, 다섯살 아들을 둔 39살 주부는 서울 송파구 마천동 남한산성 인근 집까지 1시간….
텅빈 라커룸 구석에 식품코너 아줌마가 번데기처럼 이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언니, 집에 가요.” 흔들어 깨우자, “나 오늘 야근조(밤새워 일하는 조)야. 안녕. 내일 보자”며 ‘끙’ 하고 일어나 매장으로 향했다. 야근을 하면 시급의 50%(1650원)를 추가로 받는다. 서울 도봉구 창동 다가구 주택 월세 25만원짜리 옥탑방에서 두 자녀와 살고 있는 40대 주부사원. 오로지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5년째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고 있다.
신지은기자 ifyouare@chosun.com
조선일보 (수정 : 2005.03.14 09:19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