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민대학의 지역공동체운동
“개미, 개미! 개나리, 개나리! 대추, 대추!”
젊은 선생님이 읽으면, 학생들이 큰 소리로 따라 읽는다. 한 여름 대낮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열심히 한글책을 따라 읽고 있는 학생들은 40대 주부부터 70, 80대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지난 23일 오후 안양시 안양동 한 건물에 자리잡은 안양시민대학. 이날은 올여름 들어 최고 기온을 기록하며 숨쉬기 조차 버거운 날씨. 에어콘 한 대 없는 교실에서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면서도 학생들은 한글 공부에 여념이 없다. 이 ‘대학’은 제도교육에서 소외된 성인들의 문해교육(문자해득교육)을 위해 지난 97년 세워졌다.
2년반째 시민대학 장미반에 다니고 있는 최인순(69·여)씨는 어릴 적 가난한 살림에 딸이라는 이유까지 겹쳐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40대 때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아들 3형제를 거의 혼자 힘으로 키워냈다.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졸업시킨 아들들은 모두 가정을 꾸렸고 최씨는 이를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70평생 동안 풀리지 않은 배우지 못한 ‘한’은 최씨에게 가장 큰 아픔이었다.
“속이 답답해서 항상 죽을 지경이었어. 말을 하면 뭐해. 읽고 쓸 줄을 모르는데. 은행에서 돈도 내 힘으로 못 찾아서 다른 사람 도움으로 겨우 찾아 집에 오면 눈물만 펑펑 흘렸지.”
숙명여대에서 17년여간 청소일을 해온 최씨는 10여 년 전 일을 그만둔 뒤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안양시민대학을 찾아왔다. 최씨는 1년 반 만에 “은행에서 내 손으로 돈을 찾을 수 있게”됐다.
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는 지영화(59)씨는 작은 딸과 며느리의 소개로 지난해 3월 시민대학에 입학했다. 1년 동안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아 장학생으로 뽑혔고, 도토리반 반장을 거쳐 올해 3월 학생대표자회의에서는 회장으로도 선출됐다. 지씨도 13년 동안 한 모피회사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며 1남2녀를 키워냈다. 고생 끝에 자식들 시집·장가를 다 보내고 나니, 읽고 쓸 줄 몰라 겪었던 마음고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 노량진에 있는 한글 학원을 다녀보기도 했지만,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민대학을 찾으면서 이제는 읽고 쓰는데 별 문제를 못 느낀다.
한글학교에서 시작했지만 시민대학은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영역을 넓히고 있다. 98년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공부방을 꾸렸고, 결식 노인을 위한 토요 무료 급식 활동 ‘한마음 식사’를 시작했다. 2000년에는 재활용품 가게인 녹색가게를 만들어 ‘녹색가정만들기’에 나섰다.
거쳐간 학생들 벌써 4천명
△ 안양시민대학 자원봉사 교사가 수강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 안양/김태형 기자
한글을 뗀 주부와 할머니들은 시민대학의 ‘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더불어 사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하루라도 시민대학에 오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다?최씨는 시민대학의 동료들과 함께 안양 지역 결식 노인을 위한 토요무료 급식 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봉사활동에 열심이다. “못배우고 가난하던 이 늙은이가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밥을 다 해줬으니 이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어” 최씨는 내년 봄 한글 과정을 마치고 영어, 한문 과정을 거친 뒤 시민대학의 자원교사가 되는게 꿈이다. 게다가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며 큰 보람도 느끼고 있다. 이제야 “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지씨도 시민대학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1년에 한 차례씩 바자회를 열고요. 매달 3째주 토요일엔 재활용품 벼룩시장에도 나가죠. 또 토요일마다 학생들끼리 팀을 짜서 돌아가면서 결식 노인들을 위해 ‘한마음 식사’를 베풀어요. 안양지역 100여 명의 노인분들이 찾아오십니다. 시에서 보조를 해주지만 돈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지씨는 이밖에도 시민대학 교사들이 공부방을 꾸리고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도 벌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올해로 8년 째 된 시민대학을 거쳐간 학생들은 벌써 4천여 명이 넘는다. 한글교육을 하는 주민자치센터 등이 생겨나면서 인원이 처음의 400명에서 줄어 지금은 300여명이 이 ‘대학’에 다니고 있다. 대학 실무자는 7명이고, 자원교사는 25명이다.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재정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재정후원이 끊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료급식활동에 재활용품가게도
박사옥(32) 안양시민대학 교감은 “경제가 나빠서 학교를 그만두는 분들도 많이 생기고 있고, 교사도 조금은 줄었다”며 “학교에서 지원을 늘릴 수 있으면 중간에 그만두시는 분이 많이 줄어들 수 있을텐데 재정이 넉넉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양/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한겨레,2004.07.28>
“개미, 개미! 개나리, 개나리! 대추, 대추!”
젊은 선생님이 읽으면, 학생들이 큰 소리로 따라 읽는다. 한 여름 대낮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열심히 한글책을 따라 읽고 있는 학생들은 40대 주부부터 70, 80대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지난 23일 오후 안양시 안양동 한 건물에 자리잡은 안양시민대학. 이날은 올여름 들어 최고 기온을 기록하며 숨쉬기 조차 버거운 날씨. 에어콘 한 대 없는 교실에서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면서도 학생들은 한글 공부에 여념이 없다. 이 ‘대학’은 제도교육에서 소외된 성인들의 문해교육(문자해득교육)을 위해 지난 97년 세워졌다.
2년반째 시민대학 장미반에 다니고 있는 최인순(69·여)씨는 어릴 적 가난한 살림에 딸이라는 이유까지 겹쳐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40대 때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아들 3형제를 거의 혼자 힘으로 키워냈다.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졸업시킨 아들들은 모두 가정을 꾸렸고 최씨는 이를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70평생 동안 풀리지 않은 배우지 못한 ‘한’은 최씨에게 가장 큰 아픔이었다.
“속이 답답해서 항상 죽을 지경이었어. 말을 하면 뭐해. 읽고 쓸 줄을 모르는데. 은행에서 돈도 내 힘으로 못 찾아서 다른 사람 도움으로 겨우 찾아 집에 오면 눈물만 펑펑 흘렸지.”
숙명여대에서 17년여간 청소일을 해온 최씨는 10여 년 전 일을 그만둔 뒤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안양시민대학을 찾아왔다. 최씨는 1년 반 만에 “은행에서 내 손으로 돈을 찾을 수 있게”됐다.
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는 지영화(59)씨는 작은 딸과 며느리의 소개로 지난해 3월 시민대학에 입학했다. 1년 동안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아 장학생으로 뽑혔고, 도토리반 반장을 거쳐 올해 3월 학생대표자회의에서는 회장으로도 선출됐다. 지씨도 13년 동안 한 모피회사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며 1남2녀를 키워냈다. 고생 끝에 자식들 시집·장가를 다 보내고 나니, 읽고 쓸 줄 몰라 겪었던 마음고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 노량진에 있는 한글 학원을 다녀보기도 했지만,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민대학을 찾으면서 이제는 읽고 쓰는데 별 문제를 못 느낀다.
한글학교에서 시작했지만 시민대학은 더불어 사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영역을 넓히고 있다. 98년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공부방을 꾸렸고, 결식 노인을 위한 토요 무료 급식 활동 ‘한마음 식사’를 시작했다. 2000년에는 재활용품 가게인 녹색가게를 만들어 ‘녹색가정만들기’에 나섰다.
거쳐간 학생들 벌써 4천명
△ 안양시민대학 자원봉사 교사가 수강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 안양/김태형 기자
한글을 뗀 주부와 할머니들은 시민대학의 ‘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더불어 사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하루라도 시민대학에 오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다?최씨는 시민대학의 동료들과 함께 안양 지역 결식 노인을 위한 토요무료 급식 활동에도 참여하는 등 봉사활동에 열심이다. “못배우고 가난하던 이 늙은이가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밥을 다 해줬으니 이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어” 최씨는 내년 봄 한글 과정을 마치고 영어, 한문 과정을 거친 뒤 시민대학의 자원교사가 되는게 꿈이다. 게다가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며 큰 보람도 느끼고 있다. 이제야 “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지씨도 시민대학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1년에 한 차례씩 바자회를 열고요. 매달 3째주 토요일엔 재활용품 벼룩시장에도 나가죠. 또 토요일마다 학생들끼리 팀을 짜서 돌아가면서 결식 노인들을 위해 ‘한마음 식사’를 베풀어요. 안양지역 100여 명의 노인분들이 찾아오십니다. 시에서 보조를 해주지만 돈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지씨는 이밖에도 시민대학 교사들이 공부방을 꾸리고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도 벌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올해로 8년 째 된 시민대학을 거쳐간 학생들은 벌써 4천여 명이 넘는다. 한글교육을 하는 주민자치센터 등이 생겨나면서 인원이 처음의 400명에서 줄어 지금은 300여명이 이 ‘대학’에 다니고 있다. 대학 실무자는 7명이고, 자원교사는 25명이다.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재정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재정후원이 끊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료급식활동에 재활용품가게도
박사옥(32) 안양시민대학 교감은 “경제가 나빠서 학교를 그만두는 분들도 많이 생기고 있고, 교사도 조금은 줄었다”며 “학교에서 지원을 늘릴 수 있으면 중간에 그만두시는 분이 많이 줄어들 수 있을텐데 재정이 넉넉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양/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한겨레,200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