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급증… 채무 재조정 신청자 절반 이상
빚쫓기던 주부, 노래방·찜질방 전전하다 이혼도
서울에서 작은 웅변학원을 운영하던 주부 K씨(36)는 1년 전만 해도 신용불량자가 무언지 조차 몰랐다. 그러나 음식점에 재료를 공급하는 남편(42)의 사업이 불황을 타면서 남편이 먼저 신용불량자가 됐고, K씨는 급전(急錢)을 꾸어다 남편의 빚을 메우다가 결국 작년 말 자신도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주부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가장 노릇을 하는 여성 가구주들이 빈곤의 늪으로 떨어지는 ‘빈곤의 여성화’ 현상이 우리 사회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취약 계층의 빈곤화(化)현상이 남성보다 여성층을 더욱 강도높게 급습한 것이다.
23일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월 중 채무 재조정을 신청해온 신용불량자 9625명 중 여성이 53.9%(5188명)를 차지했다. 이 같은 추세는 30대(50.5%), 40대(51.5%), 50대(53.5%) 모두 마찬가지여서 주부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아졌음을 입증했다.
또 본지가 입수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여성의 빈곤 실태 분석과 탈빈곤 정책과제 개발’ 보고서는 “여성 빈곤층이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 심각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빈곤 여성 급증=서울 중계본동 104번지 달동네. 이 마을 입구의 노인복지시설 ‘평화의 집’에는 할머니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부분 절대 빈곤층(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75명 등록인원 중 80%(60명)가 여성이다.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기준으로 여성 가구주(주소득원이 여성인 경우) 가구 5곳 중 1곳(21%)이 최저 생계비 이하의 절대 빈곤층으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가구주 비율(7%)의 3배에 이른다.
특히 65세 이성 여성 노인 가구의 경우 100가구당 무려 56가구가 빈곤의 늪에 빠져 있다. 남성 노인 가구의 빈곤비율(29.3%)보다 1.9배나 높다.
또 일하는 연령대(20~64세) 여성의 빈곤율도 크게 늘었다. 지난 96년 4.5%였던 일하는 연령층 여성의 빈곤층 비율이 5년 만에 11.6%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률이 올라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이 일을 해서 빈곤을 벗어나는 확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배우자가 사별한 여성의 빈곤 위험 높아=서울 수서동 임대아파트에 사는 박모(60·여)씨는 37살 때 남편과 사별했다. 남편과 함께 콩나물공장을 하며 생계를 꾸려 왔던 박씨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이후 길고 고달픈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치킨집 개업 폐업 실직을 겪은 박씨는 청소용역 회사에 취직해 빌딩의 화장실과 복도를 청소하며 월 45만원씩 받아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배우자가 없는 여성의 빈곤율(25.5%)이 남편이 있는 경우(11.2%)보다 두 배나 높다. 특히 이혼보다 갑작스러운 사별로 남편을 잃는 경우 빈곤의 충격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여성 가구가 빈곤층으로 떨어진 비율은 15.4%인 반면 사별 여성 가구는 이 비율이 37.9%에 달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주부들=지난해의 신용카드 거품 붕괴는 경계선상에 놓여 있던 여성들을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 김창수 기획조사팀장은 “신용불량자가 된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꾸려가던 여성들이 다시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채권 추심에 몰린 주부들이 낮에는 식당이나 노래방 등에서 일하다 밤에는 찜질방과 사우나로 전전하고, 이 와중에 이혼하는 부부도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이혼한 여성 중 상당수는 최저 생계비 이하의 절대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김태완 주임연구원은 “과거 선진국이 겪었던 빈곤의 여성화현상이 한국사회에서도 뚜렷이 발견됐다”며 “사별 등으로 경제 위기에 처한 여성에게는 특별한 정책적 배려를 하고, 여성 노인 빈곤문제를 공적 소득보장체계로 해결하는 대책이 긴급하다”고 말했다.
/윤영신 기자
<출처: 조선일보>
빚쫓기던 주부, 노래방·찜질방 전전하다 이혼도
서울에서 작은 웅변학원을 운영하던 주부 K씨(36)는 1년 전만 해도 신용불량자가 무언지 조차 몰랐다. 그러나 음식점에 재료를 공급하는 남편(42)의 사업이 불황을 타면서 남편이 먼저 신용불량자가 됐고, K씨는 급전(急錢)을 꾸어다 남편의 빚을 메우다가 결국 작년 말 자신도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주부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가장 노릇을 하는 여성 가구주들이 빈곤의 늪으로 떨어지는 ‘빈곤의 여성화’ 현상이 우리 사회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취약 계층의 빈곤화(化)현상이 남성보다 여성층을 더욱 강도높게 급습한 것이다.
23일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월 중 채무 재조정을 신청해온 신용불량자 9625명 중 여성이 53.9%(5188명)를 차지했다. 이 같은 추세는 30대(50.5%), 40대(51.5%), 50대(53.5%) 모두 마찬가지여서 주부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아졌음을 입증했다.
또 본지가 입수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여성의 빈곤 실태 분석과 탈빈곤 정책과제 개발’ 보고서는 “여성 빈곤층이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 심각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빈곤 여성 급증=서울 중계본동 104번지 달동네. 이 마을 입구의 노인복지시설 ‘평화의 집’에는 할머니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부분 절대 빈곤층(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75명 등록인원 중 80%(60명)가 여성이다.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기준으로 여성 가구주(주소득원이 여성인 경우) 가구 5곳 중 1곳(21%)이 최저 생계비 이하의 절대 빈곤층으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가구주 비율(7%)의 3배에 이른다.
특히 65세 이성 여성 노인 가구의 경우 100가구당 무려 56가구가 빈곤의 늪에 빠져 있다. 남성 노인 가구의 빈곤비율(29.3%)보다 1.9배나 높다.
또 일하는 연령대(20~64세) 여성의 빈곤율도 크게 늘었다. 지난 96년 4.5%였던 일하는 연령층 여성의 빈곤층 비율이 5년 만에 11.6%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률이 올라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이 일을 해서 빈곤을 벗어나는 확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배우자가 사별한 여성의 빈곤 위험 높아=서울 수서동 임대아파트에 사는 박모(60·여)씨는 37살 때 남편과 사별했다. 남편과 함께 콩나물공장을 하며 생계를 꾸려 왔던 박씨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이후 길고 고달픈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치킨집 개업 폐업 실직을 겪은 박씨는 청소용역 회사에 취직해 빌딩의 화장실과 복도를 청소하며 월 45만원씩 받아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배우자가 없는 여성의 빈곤율(25.5%)이 남편이 있는 경우(11.2%)보다 두 배나 높다. 특히 이혼보다 갑작스러운 사별로 남편을 잃는 경우 빈곤의 충격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여성 가구가 빈곤층으로 떨어진 비율은 15.4%인 반면 사별 여성 가구는 이 비율이 37.9%에 달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주부들=지난해의 신용카드 거품 붕괴는 경계선상에 놓여 있던 여성들을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 김창수 기획조사팀장은 “신용불량자가 된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꾸려가던 여성들이 다시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채권 추심에 몰린 주부들이 낮에는 식당이나 노래방 등에서 일하다 밤에는 찜질방과 사우나로 전전하고, 이 와중에 이혼하는 부부도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이혼한 여성 중 상당수는 최저 생계비 이하의 절대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김태완 주임연구원은 “과거 선진국이 겪었던 빈곤의 여성화현상이 한국사회에서도 뚜렷이 발견됐다”며 “사별 등으로 경제 위기에 처한 여성에게는 특별한 정책적 배려를 하고, 여성 노인 빈곤문제를 공적 소득보장체계로 해결하는 대책이 긴급하다”고 말했다.
/윤영신 기자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