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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사업사업’으로 따뜻한 포옹을
02-12-02 10:57 1,283회 0건
담임교사의 손에 이끌려 온 1학년 미영(17·가명)이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며칠째 무단결석을 하다 등교를 했단다. “집에서는 계속 학교에 간다고 하고 나갔대요.” 간단한 상황설명과 함께 미영이를 인계한 담임교사는 교무실로 돌아갔다. “생활지도 선생님한테 꾸중 많이 들었니 오늘은 수업 안들어가도 되니까 나랑 같이 있자.”

서울 양천구 신정4동 영상고 ‘학교사회사업실’의 풍경이다. 미영이를 달래고 있는 이는 이 학교 사회사업가 김주미(30)씨. 김씨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회복지사이다. 학교와 사회복지사, 잘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왠지 현실에선 아직 어색한 조합이다. 그러나 두 영역은 ‘학교사회사업’이라는 개념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학교사회사업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복지 서비스다. 학교 차원에서의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학생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영상고는 사회복지사를 자체 고용해 학교사회사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유일한 학교다. 지난 1997년 영등포여상 시절 서울시교육청의 학교사회사업 시범학교로 지정돼, 1년간 사회사업실을 운영해 본 결과 학생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나자 그 이듬해부터 김씨를 계약직 교원으로 채용했다.

김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펴고 있는 ‘사회사업’은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개별상담을 통한 심리치료다. 성적과 진로, 성격, 학비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상담을 신청해오기도 하고, 때로는 담임교사나 학생생활지도 교사가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학교 부적응, 학습부진, 가정해체 등의 문제로 교육적 병리현상을 보이는 아이들의 상담을 의뢰하기도 한다. 김씨는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면 학생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거나, 보건소, 병원, 복지관, 사회단체 등의 전문가 도움을 주선하기도 한다. 수업 참여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교실에 들여보내지 않고, 사회사업실의 치료·예방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대신한다. 김씨가 확인서를 써주면 결석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학생의 징계를 결정하는 학교 선도회의에 참여해 학생의 변호인 구실을 하기도 하고, 학생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처방을 담임교사 등에게 조언도 한다. 전입 및 복학생을 위한 학교적응 프로그램, 징계 학생을 위한 관찰교육 프로그램 등 집단활동도 김씨의 몫이다. 김씨는 “학교사회사업가는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등 학생을 둘러싼 환경의 조정자 구실을 통해, 심리치료, 가족치료, 의료·경제적 지원 등 학생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적절히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사회사업의 수혜자가 꼭 ‘문제학생’들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동문 등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한 진로탐색 및 취업지도, 대인관계기술 향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학생들의 교내 문화공간인 ‘교실카페’를 운영하는 일도 사회사업실의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이 학교 2학년 이수진(18)양은 “김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처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우리 눈높이에서 끝까지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에 마음이 답답할 때 사회사업실에 들르면 언제나 속이 후련해진다”고 말했다.

학교사회사업의 밑바탕에는 ‘학교는 작은 사회’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학교도 다양한 처지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인 만큼, 학교 밖 사회처럼 복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사회사업이 실현하고자 하는 학생복지는 학생들의 인권 보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안전과 건강,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등 1차적인 복지 서비스와 함께 표현의 자유, 징계와 자퇴 등의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밟을 권리, 성적과 가정환경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보장받을 때 진정한 학생복지가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교는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의 터전”이라며 “그런 만큼 학생복지를 통해 모든 학생들의 인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교육기회의 공평한 배분이 가능해지고 진정한 교육복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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