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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대~한민국
02-10-07 11:10 1,374회 0건
프랑스인 신부로 한국에 귀화한 뒤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 섰던 여동찬 교수는 한국인의 특성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철저한 계급의식’을 들었다. 그는 신라의 골품(骨品)제도와 유교적 문화전통에서 계급의식의 근원을 찾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맨 먼저 상·하를 따지는 것이나 개인의 인격이나 자유보다는 질서유지에 필요한 권위를 먼저 내세우는 것 등도 계급의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여동찬 교수의 진단이었다.


하기야 장기판도 두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훈수하는 사람에게 수가 더 잘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모르고 지나는 사실이 외국인의 눈에는 더 잘 띄는지도 모른다. 상하의 위계질서나 집단의 교의(敎義)에 개인이 묻혀버리는 현상을 굳이 ‘계급의식’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진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차별의 그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따라서 ‘인간승리’니 뭐니 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일대기는 대부분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차별의 덫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속된 말로 ‘가방끈이 짧은 탓’에 받아야 했던 차별, 또는 신체장애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차별,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했던 차별과 비하 등. 대부분의 ‘인간승리’는 이처럼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각종 차별을 극복하고 오늘의 성취를 이룩해낸 사람들의 일대기다.


‘백범일지’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상놈’이라는 신분상의 차별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갈고 닦아 임정(臨政)의 지도자로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입지전적 생애 때문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하기 위해 일부러 상놈 행세를 한 조상 탓에 영원히 판에 박은 상놈이 되었다는 것이 백범의 술회다.


-여성총리 거부감도 차별 흔적-


물론 지금은 제도상으로 반상(班常)의 차별도 없어졌고 남녀차별도 없어졌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요즘 들어 각 씨족마다 화수회 모임이 활성화되고 조상을 현창하는 사업들을 다투어 벌이는 데는 자기 문중의 우월성을 내세워 다른 문중과의 차별성을 과시하자는 숨은 의도가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번 장상(張裳) 총리서리의 낙마에서 보았듯이 여성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물론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비합리적인 모든 차별이 조선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집단의 대의에 희생되거나 사조직의 배타적 이기주의 등에서 빚어지는 차별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다양한 형태로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많은 동창회나 향우회, 화수회 등에서 표출되는 이른바 ‘우리 의식’은 다른 집단에 대한 차별성과 배타성을 영양분으로 집단이기주의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해 전 행정자치부의 어느 관리는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저서에서 지연과 혈연, 학연이 어떻게 공직질서를 왜곡하는가를 극명하게 고발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출세하려면 세도가 집안이거나, 혼사를 잘 맺든지, 아니면 유수한 대학의 법대 상대를 나와 고시에 붙든지, 고향을 잘 타고나야 한다. 인사철마다 그동안 들어놓은 고향보험, 동창보험 등 각종 보험을 동원해 게걸음을 잘하면 보직관리가 되고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끼리끼리 문화 폐쇄사회 증거-


입만 뻥긋하면 세계화와 ‘열린 사회’를 들먹이면서도 각종 끈(緣)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크고 작은 집단을 이루어 끼리끼리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폐쇄회로가 타파되지 않는 한 선진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물론 개인이 파편화된 시대에 동창끼리 고향사람끼리 또는 같은 혈연들끼리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고 정을 나눈다는 것은 더 없이 좋은 미풍(美風)일 수 있다. 그러나 끼리끼리 뭉치는 것이 자주 다른 집단에 대한 배타적 이기주의로 변질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지난 월드컵 기간동안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또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소리높여 외치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 속에서 우리는 모처럼 온 나라가 하나되는 감동을 맛보았다. 적어도 그 기간동안만은 남녀노소와 빈부격차, 그리고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온 겨레가 한 마음으로 결속하고 통합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면서 한마음으로 외쳤던 ‘대~한민국’도 안으로 눈을 돌리면 수없이 많은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과 분열이 상존(尙存)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라면서도 남과 북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단되어 있고 남쪽은 남쪽대로 영남이다 호남이다 해서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TK끼리도 성골이니 진골이니 해서 편가르기를 하고 학연에 따른 권력독점 현상을 두고 육법당(陸法黨)이니 뭐니 했던 것이 바로 얼마전까지의 우리 모습이 아니었던가. 뿌리깊은 연고주의와 집단이기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집단으로 미분(微分)되는 현상을 낳고 그 미분되는 만큼 차별의 병폐가 적분(積分)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같이 빗나간 연고주의에 의한 차별의식은 공정한 경쟁의 룰을 무너뜨리고 끝내는 나라의 기강까지 흔든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집단이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주는 ‘갑옷’이 되고, 남보다 빠른 입신양명의 발판이 되어준다면 앞으로도 집단이기주의와 그에 따른 갈등과 차별의 병폐는 좀처럼 뿌리뽑히지 않을 것이다. 뚜렷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힘을 이용하거나 빌리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의민족’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전통적인 순수주의나 순혈(純血)주의도 차별의식을 가꾸는 토양이 되고 있다. 적서(嫡庶)를 철저히 차별했던 조선왕조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국인을 비하하고 혼혈(混血)인을 차별하는 밑바탕에는 우리의 전통적인 순혈주의가 숨어있다. 중국인과 일본인을 ‘되×’이니 ‘쪽발이’ 등으로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수천년동안 단일민족국가를 유지해 왔다는 긍지에도 불구하고 잦은 외침(外侵)을 겪었던 것에 대한 방어본능이 이웃나라에 대한 배타적 심성으로 굳어진 것이다.


외국 특히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우리는 순혈주의의 횡포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와 한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가 그들보다 조금 더 잘 산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고 구박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분명히 같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 사람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혼혈인들이 교실에서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당하는 차별의 사례는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게다가 병영은 물론 거의 모든 조직에서 볼 수 있는 ‘텃세’심리도 우리 사회의 차별의식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조직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늦게 들어온 사람을 차별하고 그 앞에 군림하는 텃세심리는 중국동포나 탈북자들을 차별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그야말로 같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면서도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또는 북한에서 살다가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구박하고 차별하는 것은 ‘까치의 텃세’나 다름없다.


-취업·진학 가로막는 장애차별-


우리나라에는 사원이 300명을 넘는 기업은 의무적으로 사원의 2%를 장애인으로 뽑으라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벌금’을 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매년 몇억원에 이르는 벌금을 내면서도 장애인 고용을 기피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차별이 사라지려면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의식을 바꾸는 것은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수천년 동안의 전통 속에서 굳어진 의식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제도와 실천을 통한 차별 철폐와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이 꾸준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지연과 학연에서 빚어지는 차별이나 편중인사는 권력자의 결단이나 제도적 보완으로도 쉽게 고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공정인사니 탕평인사니 말만 번지르르한 공약을 내걸었다가도 일단 집권만 하면 여전히 지연과 학연에 집착하는 인사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차별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광훈 논설고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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