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질환 노숙인 실태★
장기간에 걸친 노숙생활과 폭음으로 알코올중독에 이르게된 이모씨
(44)는 청량리역 노숙자다.술 때문에 직장까지 잃은 이씨는 가족으로
부터 버림받은 98년부터 노숙생활을 해오고 있다.그동안 3∼4곳의 쉼
터를 배회했지만 번번이 말썽을일으켜 쫓겨났다.이씨는 통증이 찾아
올 때면 구걸한 돈으로산 소주로 버텨내고 있다.지금까지 이씨에게 병
원 치료의 기회는 단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알코올중독을 포함한 정신질환이 노숙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회복귀는 커녕,치료조차 꿈꾸기 어려운형편이다.정신질환 노
숙자들을 위한 의료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이들에 대한 의료보장은
구호차원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 자유의 집에 처음으로 정신과 전문의가 파견되면서
정신건강센터가 설립됐지만 노숙자에 대한 정신질환 평가와 진단만 이
뤄질 뿐 약물 투여 등 치료는 이뤄지지않고 있다.진단만 있고 치료는
없는 셈이다.정신건강센터 관계자는 “정신과 의사가 있지만 의료행위
는 의료법에 저촉돼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
다.
따라서 정신질환 노숙자들은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서울 장안동의 한 쉼터에서 피해망상 등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자유의 집 정신건강센터로 이송된 노숙자 최모씨(40)는 한달 뒤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쉼터는 증세가 심각한 최씨를 시립정신병원에
입원시켰지만 20일만에 강제퇴원 조치됐다.최씨는 쉼터로 돌아왔으나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났다.최씨가 난폭한 행동을 하며 끊임없
이 말썽을 일으킨 탓이다.쉼터 관계자는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정신질환 노숙자를 무슨 수로 쉼터에서 관리할 수 있겠느냐”며 한숨
지었다.
정신질환 노숙자들에 대한 치료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알코올
중독의 경우 일시적인 금단현상이나 간기능 저하등 신체적인 문제만
해결하는 ‘해독수준’에 머물고 있어지속적인 치료를 통한 자활서비
스와는 거리가 먼 상태이다.병실이 포화상태에 이른 국·공립 정신병
원들은 정신질환 노숙자들의 장기입원을 꺼린다.당장 입원이 필요한
노숙자도 2∼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시립은평병원 관계자는 “병원을 증축하면서 의사 16명의충원을 요청
했지만 7명을 충원하는데 그쳐 기존의 환자들을치료하기에도 의료 인
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방의 의료체계는 사정이 이보다 더 열악하다.민간 의료기관을 빼면
2∼3차 노숙자 지정의료기관이 전혀 없는 지역도있다.진료를 받으려
면 노숙자 진료의뢰서 작성-관할구청 의료계 송부-시립의료원 서류 전
달-쉼터 통보-환자 진료 등 5∼7단계를 거쳐야 한다.입원이 필요한 응
급 노숙자의 경우행려코드를 부여받기 위한 신원조회에만 1주일 이상
이 걸린다.
전문쉼터의 알코올중독 재활프로그램도 시설 및 전문인력부족,지역 정
신병원과의 의료시스템 연계 미비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최고 80%에 이르는 높은 재발률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외부 강사를 초빙,매주 한차례씩 알코올중독 재활프로그램을 운영하
고 있는 강릉 희망의 집의 경우 노숙자들의 참여가 저조한데다 재발률
도 80%에 달한다.이용순 상담실장은 “알코올중독 노숙자 전문쉼터가
제역할을 하려면 지속적인 예산 지원과 전문 의료인력 확보가 선행돼
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쉼터에서는 알코올 재활프로그램 도중 노숙자끼
리 폭력사태가 빚어져 경찰이 출동해야 했다.전문가들은 “알코올 중
독자와 비중독자,재활 의지가 있는 노숙자와 없는 노숙자가 마구 뒤섞
여 있는 등 전문쉼터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숙자 자
활지원 및 의료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
다.
최근 인도주의의사실천협의회는 IMF 이후 서울시내 거리에서 사망한
노숙자가 98년 479명,99년 467명,2000년 413명,2001년 313명(11월말
현재) 등 4년간 1,672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대한매일, 안동환기자 sunstory@kdaily.com ★